게일은 1927년 6월 한국을 떠나 영국의 배쓰(Bath)에 정착하여 한국교회의 유럽 대표로 활약하였으며 1937년 1월 31일 「How Beautiful, How Wonderful」이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게일의 선교사역은 그에 대한 여러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애착과 존경심,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그의 큰 사랑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의 빛나는 유산과 정신적 가치를 서구에 알린 문명의 교량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한국교회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으며 초기 한국교회의 전도방법, 갈등과 고난, 개화기 교회의 역사를 몸으로 직접 그려내었다.
게일보다 당시 조선을 더 아는 사람도 없고 게일보다 한국 사람의 마음을 깊이 사랑했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게일보다 더 한국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선교사도 없다. 그는 “박식가, 조선학의 대가, 조선학의 거인” 등의 다양한 칭호를 받았는데 그 누구도 지금까지 조선에 온 서양 선교사로는 그의 재주와 박식함을 따를 자가 없으며 한국인의 마음을 서양 사람들에게 가장 잘 전달하는 ‘훌륭한 문화 해설자’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의 거대한 ‘문화적 다리 잇기’는 이를 통해 동서양의 종교갈등과 문화적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게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가 이교도 속으로 유연하게 진입(slide into)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조선사람이 되어 함께 울고 웃고….’ 게일은 서구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심장은 한국인의 문화로 현지 인화(in culture) 하여 스코틀랜드의 정신(Scottish sprit), 캐나다인의 생각(Canadian mind) 그리고 한국의 심장(Korean heart)을 가진 참으로 기이(奇異)한 선교사였다.
올해는 선교사 게일의 한국선교가 133년이 되는 해이다. 금번,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게일 관련 사료를 소개하는 전시를 통해 게일과 마주하고 게일을 느끼며 한 성육신적인 거인(巨人) 선교사를 기억함은, ‘코로나 19’의 깊은 터널, 저 끝의 희미한 빛을 막 통과하는 우리에게, 역사의 기억과 향기를 통한 용기와 치유와 힐링을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