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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기의 노래” -『아이생활』과 『아동가요곡선』을 중심으로 본 1920-30년대 기독교 동요 운동- (이인수)

일제하 1930년대는 일본의 대륙팽창 정책과 침략의 야욕이 노골화되고 그들이 식민지 한국에 대한 수탈과 지배체제를 더욱 강화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일제하 동요 운동은 단순한 음악적 작업이라기보다는 일제의 정책에 맞선 의도적인 동요 창작 운동이자 동요보급 운동으로 해석돼야 한다. 그 목적은 조선인의 순수한 민족 정서와 동심을 함양하고 인문학적인 순수예술성을 지키고 서양음악을 근대 조선에 보급하는데 기여한 기독 음악인들이 있었음을 알리고자 하였다. 강신명 목사는 해방 후 1949년까지 이북 선천에서 목회 활동을 하였고 이후 새문안교회 목회와 총회장 등을 역임하였는데 특별히 본 조명에서는 강신명 목사 동요작업의 의미를 1930년대 한국 동요 보급 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주일학교 운동과 일제에 대한 간접적 저항운동의 맥락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다.

1910년부터 시작된 순우리말 가사창작은 조선어 교육에 목적이 있었으며 강신명은 목회자였음에도 노래책의 제목을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이라고 포괄적으로 명명하여 종교색을 지우고 주일학교 노래와 일반 동요를 한곳에 모아 노래곡집을 편찬하였는데 특별히 아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천도교 사상을 드러낸 방정환의 어린이라는 용어와의 변별성을 기울였다. 가사는 순우리말 가사로 창작하여 활동하였고 이는 일제에 대한 간접적인 저항운동이었으며 순수한 민족 정서와 동심을 함양하기 위함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예배의 부분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에는 말씀, 기도, 찬송, 감사 등의 내용을 가진 노래가 27곡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의의는 동요의 암흑기라고 여겨지는 일제 통치 말기에도 우리말과 노래가 주일학교의 현장에서 이어졌던 사실을 드러내고 일제의 검열과 압제 속에서도 신앙과 애국 사상 및 신조들을 실천했던 아동 잡지와 이를 수용한 주일학교 노래집을 토대로 근대동요의 창작 및 보급을 통한 동요 운동을 고찰해 봄으로써 근대 아동 음악문화를 이해하고 한국 동요의 다양한 실체들을 접해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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