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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이천의 기독교 3.1운동의 역사 (이인수)

 

본 글을 1918년 제15회 박물관 기획전시 [경기, 이천 기독교 1919]의 도록에 수록된 글이다.

박물관에서는 1919년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한해 앞둔 시점에서 3.1운동의 이야기를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이천을 중심으로하여 깔때기를 통해  들여다보듯이

가까운 이천지역, 여주, 양평, 수원, 광주 등에 부터 확산되어 2019년 3.1운동 100주년 전시를 준비하고 열어가는 의미로 전시가 기획되었다.

다음은 그 도록에 수록된 글중 나가는 말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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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에 형성된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이 항일민족 저항운동으로 표출된 것은 1905년 일사조약의 체결 이후였다. 우리 국권의 상징인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해 내정간섭을 시작한 일본에 대해 기독교인들의 항일민족의식과 구국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천지역의 3.1운동의 역사가운데, 특히 이천 태생의 전덕기 목사는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이승만 등 상동파로 대표되는 민족운동가들과 더불어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천지방 전도사 구연영과 구정서 부자는 항일운동을 펼치다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어 공개처형을 당하는 등의 순교와 순곡의 역사가 이 고장에 서려 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일본의 무단 통치하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교육과 종교도 탄압을 받았다.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도시의 노동자 또한 크게 차별을 받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거세어져 갔고, 다양한 형태의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다.

선교초기부터 형성된 기독교 민족운동은 일제의 강제 합방 이후에도 한국교회와 기독교 계통학교와 기관들이 일본의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 선교사들의 의도와는 달리 민족주의 기독교교인들의 민족운동 논의와 정보교환이 이루어 질수 있었고, 해외에 설립된 한인교회와 기독교청년회를 통해 국외의 국제정치 정세와 독립운동에 관한 정보가 국내교회와 기독교 조직을 통해 유입됨으로서 교회가 3.1운동의 통로로 기여할 수 있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러한 민족운동의 아픔과 함께한 이천지역의 교회지도자와 민족운동가들의 숭고한 역사와 정치적 가치를 다시금 대면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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