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자료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 공유하기
  • 링크복사
  • 화면 인쇄하기
  • 블로그공유
  • 페이스북공유
  • 트위터공유
  • 카카오스토리공유
  •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온 누리에...

    언론보도자료

    '오직예수'의 사람 香山 한영제장로

    첨부파일0


    '오직예수'의 사람 香山 한영제장로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조회수 : 134]
     
    <弔詞>김순권목사증경총회장, CBS이사장, 경천교회

    지난 2004년도에 발간된 전국장로회연합회 '장로총감' 앞면에 '오직예수'의 휘호를 써 놓은 향산 한영제장로의 붓글씨를 보면서 그분의 신앙과 인격을 오늘 이 자리, 그분을 떠나보내면서 다시금 되새겨 본다. 한 장로의 아호가 '향산'으로 정해진 것은 고향인 평안북도 구성군 군사면 향산동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지금까지 가까이에서 한 장로를 지켜봐온 정승준장로를 통해서 들었다.

      
    <#IMG1_L#> 
    총회장 김영태목사가 한영제장로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한영제장로는 '오직예수' 신앙일념으로 살았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은 언제나 겸손히 몸을 낮추고 섬김과 봉사의 믿음을 실천해 왔다. 검소한 삶을 그대로 보이면서 교회와 다른 사람들, 특히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하여 한나요양원의 어른들을 잘 모셨다.
    모범된 장로상을 지켜왔기에 지난 7월 경주에서 모였던 전국장로수련회에 참석한 수천명의 장로들이 한영제장로를 생존하는 장로 중 제일 존경스러운 장로로 뽑아준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지금껏 그가 '오직예수'만을 위한 신앙의 길을 살아왔고 걸음마다에는 예수님의 향기와 흔적을 남겨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출판문화사업으로 남긴 '한국기독교 인물 대사전'과 대 역작으로 내 놓은 '기독교 대백과사전'은 두고두고 우리 한국기독교사에 길이 남아 큰 자료로 사용될 것이다. 그 '오직예수'의 신앙의 길을 찾아 이북에서 남쪽으로 월남해서는 숱한 고난과 시련을 딛고 문서선교를 위한 교문사를 세워서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 숨은 도움을 베풀었다.
    1992년 9월, 우리 교단 제77회기엔 장로로는 처음 총회장으로 피선되어 취임한 때 필자는 총회 서기로 함께 총회를 섬기면서 그분의 고매한 인품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한 호수같은 잔잔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조용한 말씨는 우리 모두를 편안케 했다. 회의시간엔 언제나 경청하는 자세로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는 긍정적인 총회장이었다. 언제나 총회장이라는 자리보다 자신은 장로라며 "목사님들이 제일이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마지막 가기 전까지 불편한 거동에도 부인 고화일권사의 부축을 받으며 모든 모임에 빠지지 않던 그분의 모습, 못뵈올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경기도 이천 한나요양원에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세우고 우리나라 기독교의 흐름을 알리려고 애쓰던 그분의 모습도 그리워진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는 물이라고 했듯이 한영제장로의 지나온 세월 역시 흐르는 물이 되어 앞으로 계속 흐르게 될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쓴 전도서 7장의 말씀이 생각난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향산 한영제장로! 그 이름 우리 곁에 계속 남을 것이다. 인생의 마라톤을 신앙의 레일 위에서 한 번도 어긋나지 않고 '오직예수'를 향한 행진의 완주를 하고 여기까지 달려온 한영제장로는 사도바울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한 것과 같은 삶을 살았다.
    이제 고통이나 아픔도 없는 평안의 주님 품안에서 영원히 안식 누리소서!
     
    입력 : 2008년 08월 13일 18:57:15 / 수정 : 2008년 08월 13일 19:02:05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