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자료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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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자료

    [국민일보] '경기ㆍ이천 기독교 1919' 기획전



    내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관장 한동인)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23일부터 12월 30일까지 경기도 이천시 대평로의 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경기·이천 기독교 1919’를 제목으로 기획전을 갖는다.

     

    한동인 관장은 16일 “이천을 중심으로 수원 양평 등 경기도에서 일어난 3·1운동의 기독교 인물과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전시회”라고 취지를 밝혔다. 

     

    전시는 ‘3·1운동의 역사 시대적 배경’ ‘한국교회와 기독교 3·1운동의 의의’ ‘경기도의 3·1운동과 기독교’ ‘이천의 기독교 3·1운동과 인물들’ ‘3·1운동에 미친 기독교의 영향과 변천’ 등 5부로 구성됐다. 

     

    100년 전 이병주 연희전문학교 학생회장이 친필로 쓴 ‘3·1운동 체험기’를 비롯해 일제가 민족 저항의 의지를 꺾기 위해 조선에 세워 운용했던 ‘조선형무소 사진첩(1924)’ 등 실물자료 40여점과 초기 기독교회사 사진자료 100여점이 전시된다.

     

    1919년 당시 경기도 수원군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만세운동이 전개된 곳이다. 특히 제암리교회 사건은 3·1운동 기간에 일어난 일본의 만행과 우리 민족이 받은 수난의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천 만세운동은 신둔면 일대와 마장면, 모가면, 백사면, 청미면, 대월면, 부발면을 중심으로 발발했다. 경기도 만세운동이 3월 초에 시작된 것과는 달리 이천에선 3월 말부터 4월 초순까지 전개됐다. 3월 30일 마장면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군중이 만세를 불렀는데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 등 종교계 인물과 지식인, 학생이 주축을 이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기획전에선 이천 등에서 3·1운동을 이끈 대표적 기독교인들을 볼 수 있다. 4월 2일 이천 장날을 기해 문건식이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3월 29일 읍내교회(현 이천중앙교회)에 모이기로 했다가 거사가 중단됐으며 4월 2일 밤 이천읍 만세운동을 하다 21세의 함규성이 태형을 선고받았다. ‘기미독립선언’에 가담한 수원 종로교회 김세환(1889∼1945) 목사와 친분이 있던 이강우(1877∼1945) 이천읍교회 목사는 이천 만세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3·1운동에 앞서 이천읍교회 담임 교역자인 구연영(1864∼1907) 구정서(1882∼1907) 부자(父子) 전도사는 ‘기독교구국회’를 결성했고 항일운동을 하다 교회 앞마당에서 순교했다. 이천 최초의 목회자인 한창섭 오천교회 목사는 일제에 대항해 의병대인 이천수창의소에 가입했다. 이천 출신의 전덕기(1875∼1914) 상동교회 목사는 공옥학교와 상동청년학교를 설립했고 105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수원지방 초대전도사였던 이하영(1870∼1952) 목사도 3·1운동에 적극 가담해 옥고를 치렀다. 양평 태생인 박동완(1885∼1941) 목사는 기독신보사 주필로 활동했고 항일단체 신간회를 창립했다. 

     

    한 관장은 “민족운동의 아픔과 함께한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의 숭고한 역사 및 정치적 가치를 대면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 singforyou@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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