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자료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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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자료

    한반도 기독교 역사의 향기를 전하는 한영제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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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기독교 역사의 향기를 전하는 한영제 관장


    한영제 관장은 역사에는 향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 향기는 메마른 우리의 가슴을 자극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를 허락해준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기독교 신앙과 역사의 향을 찾아내어 세상에 퍼뜨리는 것, 또한 미래 한국교회의 꿈들인 후세대들에게 그 향기를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평생을 바친 노장(老壯)의 모습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향기로웠다.

    뜻밖의 손님에 한영제 관장은 얼굴에 만연 미소를 짓는다. 현재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복음 선교 120년, 신앙 위인 120명” 전시회에 한국 최초 순국 목회자였던 구연영 전도사의 손자 구광회 안수집사가 찾아온 것이다. 스크랜트 선교사를 통해 처음 하나님을 믿었고, 교회마다 구국회를 만들어 일진회를 규탄하는 강연회를 열다가 1907년 의병을 진압하던 일본군 수비대에 아들과 함께 체포되어 이천 장터에서 처형을 당했다는 구연영 전도사.
    한영제 관장은 그 자손을 감격스럽게 대하며 82세 노령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관람 안내를 자청한다.

    “사람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수집해서 보여주는 거, 그것으로 사람들이 감화를 받으면, 그거이 곧 전도고 선교거든요. 그거이 얼마나 큰 효과입니까?”
    한 관장이 50년 넘게 사재(私財)를 털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유물들을 수집하고, 경기도 이천에 200평 남짓한 박물관을 지어 모든 이에게 자료를 공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955년, 당시 북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설립한 대구 평북교회를 섬기던 한 관장은 문서 사역을 통해 복음전파의 박차를 가하자는 이성호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 기독교 출판사, 기독교 전문서점을 운영하게 됐다. 4.19와 5.16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황 중에도 출판사와 서점은 꾸준히 성장해 서울 종로로 이전할 수 있었고 <죽으면 죽으리라>, <버클레이 주석>(16권), <매튜헨리주석>(45권), <기독교대연감>, <기독교대백과사전>(21권) 등 주옥 같은 서적들을 출판했다.

    50여 년 동안 출판사를 경영하며 한 관장은 한국교회사, 일반종교사, 민족운동사, 향토 관련 자료 등 다양한 서적 자료를 발굴하게 됐고, 그러면서 소멸되어가는 귀중한 자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떡해서든지 보존해서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손에 닿는 대로 기독교 유물들을 수집하게 됐다고 한다.
    그 결과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은 해방 전 출판된 기독교 고문서 5천여 점과 한국뿐 아니라 세계 교회사를 대표하는 도서, 간행물, 사진 그리고 작고한 선교사•한국 목회자들의 설교노트와 유품, 성가 레코드 판, 기록 필름 등 10만여 점의 다양한 유물들을 소장하게 됐다. 이 모든 자료들은 박물관이 개관한 2001년 이래 5차례에 걸쳐 기획전시회로 공개됐다. 2006년 11월까지 열릴 “복음 선교 120년, 신앙 위인 120명” 전시회 또한 그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획 전시이다.

    “이 일을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일이요? 글쎄…큰 것만 얘기하자면, 85년도에 출판사에 불이 났어요. <기독교대백과사전>이 제 4권까지 출판되어 출판사에 박스로 가득 쌓아 놓았을 때인데요, 그때 난 손해가 당시 돈으로 1억 가량 됐을 거예요. 굉장한 타격을 받았죠.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사업을 복귀시켜주셔서 지금까지 이렇게 멈추지 않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지금도 그 사업체를 한 관장의 자녀가 이어받아 종로에서 기독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니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자녀는 부모의 삶을 닮는 것 같다. 한 관장의 자녀가 그러 하였듯 한 관장 역시 그의 조부님의 삶을 닮았다. 한 관장의 조부님은 평양장로교 신학교의 3회 졸업생으로, 부산 초량교회 초대 한국인 목사셨던 한득용 목사님이라고 한다. 또한 당시 이북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님들과 더불어 국내 선교를 다니셨고, 노년에까지 목회를 놓지 않으셨다고 하니 그 복음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한영제 관장이 왜 그렇게 한국 기독교 역사의 뿌리를 지키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기구가 좋고 문화가 발달되어 복음 전달에 편이하고 빠르게 되었는데, 그것을 원활하게 하고 있는지 의심이 가지요. 1907년에 평양에서 한국교회의 부흥이 시작된 거 아닙니까? 그때의 열의가 지금은 부족한 것 같아요.(중략)
    그때 사람들은 신앙으로 앞세웠는데, 지금은 교회 사람들도 사치를 앞세우거든요.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하고, 검소하고 근면해야 해요. 예전에 조만식 장로님 같은 분들은 국산장려운동을 하면서 절제운동을 하셨거든요. 우리가 어렸을 적 보고 들은 것처럼 한국 교인들 안에 이런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희망뿐입니다.”

    한영제 관장에게 기도제목을 물었다. 그는 누구나 통일을 원하지 않겠냐며 하나님의 섭리를 거슬리지 않고 속히 통일이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누구나 통일을 원한다는 말 속에는 왠지 모두가 통일을 원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담긴 듯 했다. 한영제 관장은 20년 전부터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무료 노인 요양원인 한나 요양원을 운영해왔다(최근에는 중산층 가정을 위해 지어진 유료 요양원 한나 그린힐도 동역자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요양원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북에서 남으로 피난했던 당시 부모님을 모시고 오지 못한 것이 한(恨)이 되어 부모님 대신 다른 어른들을 섬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구한말 당시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서 의료와 복지, 교육을 통해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했듯 한영제 관장 역시 출판사와 요양원 경영을 통해 귀한 사역들을 감당해왔다. 그리고 이 사역의 맥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법인을 세우는 일까지 마무리 졌다. 그런데 한영제 관장은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꿈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법인을 세우는 것이다. 지금도 한영제 관장은 지금도 이 일을 실제적으로 섬겨줄 동역자를 보내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고, 분명히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한영제 관장은 역사에는 향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 향기는 메마른 우리의 가슴을 자극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를 허락해준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기독교 신앙과 역사의 향을 찾아내어 세상에 퍼뜨리는 것, 또한 미래 한국교회의 꿈들인 후세대들에게 그 향기를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평생을 바친 노장(老壯)의 모습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향기로웠다.


    출처 http://story.godpia.com/contents/gisabon.asp?cID=A14&aID=2993#list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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