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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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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자료

    고 한영제 증경총회장 2주기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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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제 장로님 2주기를 맞이하여, 한동인 장로가 인터뷰한 내용을 늦게 나마 올립니다.


    특별인터뷰 -고 한영제 증경총회장 2주기를 맞아
    [[제1240호] 2010년 8월 14일]


    장남 한동인 장로(평북노회 신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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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예수의 사람으로 살았던 한국 장로의 ‘表象’ 한국교회의 거목 한영제 장로(증경총회장, 본보 3대 발행인 및 사장 역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지 8월11일로 2년이 흘렀다. 고 한영제 장로는 평신도로서는 처음으로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교단 발전에 이바지 해왔고 생전에 한국기독교대백과사전 편찬 등 교계와 사회에 큰 기여를 해 온 분으로 지난달 본보 전국장로의식조사에서도 역대 장로 중 3위를 차지할 만큼 후배 신앙인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기억되는 존재로 각인되어 오고 있다.

    고인의 장남으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장과 기독교교문사 대표를 맡고 있는 한동인 장로(평북노회 신흥교회)를 5일 만났다.

    ▲2년이 흘렀습니다. 가족 근황은.

    ▽어머니 고화일 권사님은 아버지가 계실 때 박물관 건물 위층에서 살림을 하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계속 그 자리에서 생활하시면서 박물관을 지키시고 있습니다.


    박물관 이사회에서 어머니를 박물관 명예관장으로 추대했습니다. 자녀가 2남2녀인데 큰 누님(동숙)은 이천한나원장으로 복지시설을 맡아 운영하고 있고 저는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과 교문사, 노회, 총회 등을 섬기고 있습니다.

    여동생(동순)은 미국 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최인근 목사의 사모로 있고 남동생 동원은 2005년 설립된 이천한나원 옆에 있는 실비 노인요양시설인 한나그린힐을 섬기고 있으면서 제 위치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문서선교사역자로서의 한영제 장로님은.

    ▽기독교서회가 있지만 초창기에 민간에서 문서선교사업을 하신 것은 퍽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특히 1985년 기독교대백과사전을 기획 출G?것은 당시 일반 출판사에서도 놀랍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초 젊었을 때 잠깐 신학을 하시려다 일제와 6.25참전 등 상황이 여의치 않아 1955년 기독교출판을 시작하면서 문서로 복음 전하는 것도 하나의 사역이고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 때문인지 백과사전, 단행본은 물론이고 주석류도 많이 발행하셨습니다.

    ▲총회장으로서의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지금도 노회나 총회에 나가면 아버지의 후광을 많이 듣곤 합니다. 장로 총회장 직분 맡는 일이 이후에도 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장로로 총회장이 되셨을 때는 당시 부총회장이셨던 김창인 목사님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설교나 예식 등을 대신해 주셨는데 장로이니까 목사에게 많이 양보 내지는 배려하셨던 것 같습니다. 총회장 신분으로 미국 장로교를 방문했을 때도 장로 총회장이라 말하니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선친은 어떤 면에서 존경을 받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남한테 대접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금전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상대방을 잘 대접해드렸던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 방면에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적 정신과 물질의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오늘날 필요로 하는 존경받는 장로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정에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가정에도 충실하셨습니다. 항상 네자녀의 진로를 염려해주시면서 적극적으로 관여해주셨고, 어머니에게는 순간 순간 여행갈때나 행사시에도 되도록 같이 다니시고 챙겨주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두달전인 6월의 어머니 팔순잔치도 챙겨주셨지요. 팔순잔치가 결국은 아내에게 해 준 마지막 선물이 된 셈입니다.

    ▲평소에 좋아하셨던 성경구절과 찬송가는 무엇인가요.

    ▽성경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생각하셨습니다. 찬송가는 3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를 즐겨 부르셨습니다.

    ▲혹시 아버지에 대한 그늘은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총회나 노회 등에 가면 저 사람은 한영제 증경총회장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광된 부분도 있지만 다소 소외된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큰 일 많이 하셨고 그에 비해서는 초라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이어받은 가업과 정신을 잘 끌고 가야한다는 부담은 갖고 있습니다.

    ▲준비 중인 기념사업이 있습니까.

    ▽박물관 재단의 추모사업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것입니다. 박물관이나 한나원에서 사업을 어떻게 확대시켜나갈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선친은 1970년대 중반부터 청계천 등지를 다니며 기독교 고서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 자료들이 기독교대백과사전 완간의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현재 박물관을 통해 평생동안 모은 사료가 10만점 이상 됩니다. 지금 이천에서 이따금씩 전시되고 있으나 미흡한 감도 있습니다. 차제에 한국교회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자료가 널리 공개돼서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연구하고, 역사의식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료가 묻혀지지 않고 발표되면 한국교회 역사 연구에도 크게 기여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의 더욱 큰 관심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마전 장신대 장영일 총장님이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총회장 되시고도 남으실 분이다 감탄하셨습니다. 귀중한 자료가 많다고 하시면서 한 개인이 한국교회를 위해 흩어져 있는 사료들을 이렇게 많이 모았다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선친이 모은 자료들은 이제 남아 있는 후학들과 한국교회에 의해 널리 연구되고 발표되어져야 합니다.

    /이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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