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 한영제 (香山 韓永濟 Young Je Han) 1925. 6. 4. ~ 2008. 8. 11.
향산(香山)은 1925년 6월 4일 평안북도 구성군 사기면 향산동(香山洞)에서 한경호(韓京浩)와 김치호(金致浩) 집사의 3남으로 태어나 1944년 1월 4일 신시교회에서 원대득 장로 주례로 고화일(高化一)과 결혼하여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큰 할아버지 한득룡(韓得龍, 평양신학교 제3회 졸업생)의 영향으로 향산의 가족은 조부모로 부터 3대째 구성군 신시교회에 출석하였다.
이 교회 유치원 제1회 졸업생인 그는 주일학교 시절 유치원설립과 목회자를 위해 전 재산을 헌납한 함실녀, 이득하 두 과부교인을 통해 재물을 선하게 쓰는 법과 청년시절 김양선 목사를 통해 기독교 유물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다.
해방직후 선천의 평북노회 고등성경학교에 입학했지만 북한의 공산화로 1947년 4월 월남했다. 6ㆍ25전쟁에 참전한 향산은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중 1952년 대구평북교회 설립에 참여하였고, 1955년 5월 대구평북교회 이성호 목사ㆍ정학선 장로ㆍ정영록 집사 등과 함께 ’정문사‘를 설립했다.
1956년 출판사에 등록한 ‘기독교문사’는 1958년 서점 ‘교문사’를 열었고, 1985년 ‘기독교대백과사전’ 등 수 많은 서적들을 출판했다.
또한 향산은 1985년 사회복지법인 한나요양원을 설립하여 1백여 무의탁 노인들을 ‘북에 계신 부모님처럼' 섬겼고, 2001년 평생 모은 10만여 점의 교회사 관련 자료를 한국 교계에 헌납하는 심정으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설립했다.
신시교회 두 과부와 김양선 목사로 부터 배운 교훈을 실천한 것이다.
또한 2007년 '평양대부흥운동1백주년'을 기념하여 장대현교회를 복원한 그는 이를 통해 초대교회의 신앙이 회복되고, 평화 통일이 이루어져 북한에 교회가 복원되기를 소망했다.
향산은 1964년 5월 신흥교회 장로, 1973년 보성여자중고등학교 재단감사ㆍ이사, 1985년 한국장로성가단 초대단장, 1990년 한국기독공보 사장, 1991년 이북 4개 노회협의회 회장, 1992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1993년 한국장로교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85년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